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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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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 이성도 논설위원
  • 승인 2022.10.20 14: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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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도 논설위원
이성도 논술위원
이성도 논설위원

인생을 살면서 느끼는 감정은 상당히 복잡하고 다양하다. 따라서 이를 사실적으로나 철학적으로 분석하고 표현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단순하게 기쁨 평온 슬픔 화남 토라짐 실망 좌절 등 단어만 나열해봐도 인생이란 참으로 고난한 길임을 눈치챌 수 있다.

중세 기독교에서는 인간이 가지는 모든 감정과 생각은 오직 하나님께 귀속돼야 하고 하나님을 벗어난 감정이나 생각은 죄악으로 규정했다. 현대 기독교 역시 인간의 자유의지를 어느 정도 포용하나 하나님의 의지에 반하는 행동에 대해 관용하지 않는다.

유교, 특히 성리학은 인간의 감정을 사단칠정으로 분석하고 있다. 사단이란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의 네 가지 마음(감정)을 의미하며, 각각 인(仁) 의(義) 예(禮) 지(智)라는 선한 본성(德)에서 나오는 감정이다. 칠정은 희(喜) 노(怒) 애(哀) 구(懼) 애(愛) 오(惡) 욕(欲)의 일곱 가지 감정이다.

불교 역시 유교와 다르지 않는데, 오욕칠정이라는 인간은 다섯 가지 욕망과 일곱 가지 감정을 가지고 있다. 다섯 가지 욕망은 재물욕(財物慾) 명예욕(名譽慾) 식욕(食慾) 수면욕(睡眠慾) 색욕(色慾)이고, 칠정은 사람의 오관을 통해 일어나는 일곱 가지의 감정 즉, 희(喜) - 기쁨 · 노(怒) - 노여움, 분노 · 애(哀) - 슬픔 · 낙(樂) - 즐거움 : 희(喜)가 정신적인 것을 의미한다면 낙(樂)은 육체적인 것을 의미 · 애(愛) - 사랑 · 오(惡) - 미움 · 욕(欲) - 욕망이다.

사람의 감정이 다양한 만큼 저마다 느끼는 감정도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동일한 사안을 놓고도 처해진 입장에 따라 분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뻐하는 사람이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에서 보듯 군인이 죽고 시설이 파괴되면 한 편은 슬퍼하지만 반대편은 기뻐하지 않는가? 현재 칠십억이 넘는 인류가 있는데 각자의 감정도 그만큼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다른 감정을 불러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그 사람이 가지는 마음이다. 마음이 평온한 사람과 불안한 사람, 기쁜 사람과 슬픈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 같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범사에 감사하라고 가르치고, 무거운 짐을 하나님께 맡기고 홀가분하고 평온한 마음을 가지라고 한다. 불교와 유교, 철학자들이 제시하는 해법은 그들이 주장하는 인간의 감정만큼 다양하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법은 스스로의 마음에 있다. 이미 이를 눈치채고 설법한 이가 있으니 바로 신라시대의 원효대사다. 그는 후에 화엄종(華嚴宗)의 개조가 된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다. 비를 피해 토굴에 들어가 잠을 청했는데 목이 말라서 잠에서 깼다. 어두운 토굴 한쪽에 깨진 그릇에 빗물이 담겨 있어서 마셨는데 참으로 달고 시원했다.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뜬 원효가 본 토굴이 무너진 무덤이었고, 깨진 그릇이 해골이었다. 그러자 갑자기 구토가 나고 역겨웠다. 어젯밤 그릇이 오늘 아침의 해골이었고, 오늘 아침 해골이 어젯밤 그릇이었다. 사실이 달라진 것은 없으나 달라진 것은 마음 뿐이다. 여기서 원효는 ‘세상 모든 것은 자신의 마음에 달렸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사람이 저마다 감정을 가진 것처럼 저마다 목표도 다르다. 그리고 그 목표까지 이르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힘겹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과정을 견디지 못한 채 목표에서 멀어진다. 이를 극복한 소수의 사람들만이 성취의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통제하고 고난의 길을 견디면 나아가기 위해서는 범사에 감사하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또한 스스로 견디기 힘든 상황은 신앙으로 이를 버텨야 한다.

기독교 신앙은 인간은 태초 인간인 아담과 이브의 원죄로 인해 수고의 짐을 진다. 그러나 성경 마태복음 11장 28절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한다. 비록 원죄로 인해 수고의 짐을 지고 있지만 예수께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고 짐까지 대신 지겠다고 말씀하신다.

신앙은 인간에게 큰 축복이고 힘이다. 앞서 주장한 인간의 모든 감정들을 통제하고 이를 극복하며 피할 수 없어도 오히려 즐기며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신앙 뿐이기 때문이다. 피하려고만 한다면 결코 성공에 이를 수 없다. 오늘 내가 고통스러운 것은 내일 내게 행복이 온다는 신호다.

삶의 목표는 저마다 다를 수 있으나 과정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은 대동소이하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건너야 할 강이 고난의 강이다. 인간의 미약한 힘으로 두려움 또는 고통 때문에 그 강을 건널 수 없다면 신앙의 손을 잡고 즐기라. 그러면 어느 순간 당신은 성공의 열쇠를 손에 쥐게 될 것이다.

이성도 논설위원 kns@kn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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